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23세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[youtube(knBzW1Ur63g)]|| ||<-2><:> 요한 23세 즉위식 동영상 중 urbi et orbi || [[가톨릭]]의 제261대 [[교황]]이자 [[그리스도교]]의 [[성인]][* [[가톨릭]] 뿐만 아니라 [[성공회]] 및 ELCA(북미 [[루터교회]] 최대 교파)에서도 성인으로 기린다]. 가톨릭에서의 축일은 10월 11일, 성공회 및 루터교회에서는 6월 4일이다. 재위 시절 [[제2차 바티칸 공의회]]의 개최를 비롯하여 20세기 후반 이후의 가톨릭이 개방적, 탈권위적인 성격의 현대화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. '''20세기 [[가톨릭]]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[[교황]]'''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.[* 그의 직접적인 후임자 [[바오로 6세]]를 비롯해서 이후 등장한 교황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, 모두 요한 23세의 노선을 이어받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. 특히 요한 23세가 재위 시절에 행했던 개혁 조치들이 없었다면 [[요한 바오로 2세]] 교황과 [[프란치스코(교황)|프란치스코]] 교황 같은 이들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.] 20세기 초의 [[비오 10세]]가 가톨릭 전통주의를 대표한다면, 요한 23세는 개방 및 탈권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. [[요한 바오로 2세]]와는 달리 외모가 빼어나거나 대중적인 쇼맨십이 있진 않았으나[* [[교황]]에 선출된 후의 한 대외 행사에서 어느 신자가 "새 교황은 별로 잘생기지도 않고 늙은이네." 하며 실망 섞인 반응을 보이자, 요한 23세는 "미안합니다. [[콘클라베]]는 [[미인대회]]가 아니라서요."라고 답했다고 전한다.], 선함과 소박함, 진솔함을 무기로 인망을 얻고 존경받았다. [[교황]]이 된 뒤에도 권위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소박함과 진솔함을 잊지 않았다. 그 때문에 교황으로서 권위가 없고 교회를 세속화시킨다고 [[바티칸]]의 [[추기경]]단 일부와 마찰도 컸지만, 교황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았다. 살아 생전 [[이탈리아인]]들이 붙여준 별명은 '''선하신 교황(Il Papa Buono) 요한'''. 그리고 교황이 되기 전이나 후나, 실로 그 별명에 어울리게 산 교황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